하늘에 향한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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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과 예술

하늘에 향한 호기심

by bigmood 2022.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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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과 역사

천문학의 기원은 선사 시대의 종교적 신화적, 점성술 적인 행사에 기원합니다. 그 흔적은 민간과 관영의 천문학에 뒤섞여 수백 년 전에야 분리된 서양의 점성술에도 남아 있습니다. 초기의 천문학에서는 관측할 수 있는 태양, 달, 별, 행성과 같은 천체의 규칙적인 이동 양식을 관찰하였습니다.

고대의 천문학은 천체 관측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습니다.

천문학은 인간이 하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서 동·서양의 양쪽에서 가장 일찍 태동한 학문 중의 하나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사와 날씨 예견 그리고 해양, 지리 관측과 측량이 그 주요 동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스톤헨지처럼 천문학적 목적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유적이 건설되기도 했습니다. 제사 같은 종교적 목적 외에도 이러한 천문대들은 1년의 길이를 재거나, 매해 일정한 시기에 농사를 짓고, 수확하기 위해 하늘을 관측하는 데 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양은 적어도 청동기 시대 때부터 별을 관측하였습니다.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 모양의 구멍들이나 고분들의 벽화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인돌 덮개돌의 별 그림은 한반도에서 천문 관측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경남 의령군의 고인돌이나 평남 증산 군 고인돌 등으로 봤을 때 기원전 2천 5백년 경에서부터 이런 흔적들이 발견됩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남긴 천문학의 성과는 고분 벽화의 별자리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가 만들어졌고, 고분 벽화에도 별자리 그림이 남아 있는데, 매우 사실적이고 정확한 관측을 토대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에서도 7세기 선덕 여왕 때에 첨성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하였습니다.
다만 시대가 시대다 보니 청동기시대에는 문헌적인 기록이 전무한 상태여서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연구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천문 현상을 관측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일⋅월식, 혜성의 출현, 기상 이변 등에 관한 관측 기록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매우 정확한 기록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천체와 천문 현상에 대한 관측을 중시하였던 것은, 천문 현상이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식하였고, 아울러 왕의 권위를 하늘과 연결하려고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세기 이전에 3원 28수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십팔수에 대한 묘사는 사기나 고구려 고분에서도 나타납니다. 진 파리 4호 무덤과 덕화리 2호 무덤에서 28수가 그려져 있습니다.
동양의 대표적 천문관인 혼천설과 개천설도 중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개천설은 주나라 때, 혼천설은 후한 때에 등장하였습니다.
동양에서 사용하던 역법도 중국의 것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던 때로, 상나라의 원시적인 태음태양력에서 시작하여 전욱력(진), 태초랑(한), 의봉력(당) 순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송, 원, 명을 거쳐 천문학 연구 권한이 중국에 완전히, 절대적으로 독점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원 시대에 등장한 수시력과 명 시대에 등장한 대통령도 역법의 기준으로 자리를 잡게됩니다. 동양 최고(古)의 석각 천문도도 이때 등장하는데, 1247년 원시기에 제작된 소주천문도로, 한국의 천상열차분야지도보다 약 150년가량 빠릅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천문학자로는 원의 곽수경을 들 수 있습니다.

서양의 천문학은 동양과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면 '과학적 접근'과 '망원경'입니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에는 천문관측은 높은 건물 같은 곳에서 맨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흔히 천문학의 역사를 말할 때 자연 과학 중에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문학이란 고대에는 생존과 직결된 학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멀리 보자면 시리우스가 해가 뜨기 직전에 나타나면 나일강이 범람하는 계절이라는 것을 배운 고대 이집트가 있고, 가까이 보자면 북두칠성이 인간의 죽음을 관장한다고 믿은 고대 중국인들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New grange) 신석기 무덤이나 한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 돌지도, 마야 문명의 천문대 등 고대 천문학은 지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특히 메소포타미아, 중국, 이집트, 그리스, 인도, 마야 문명 등에서 천문대가 만들어졌고, 우주의 본질에 탐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천문학은 오늘날에는 측성학으로 알려진, 하늘에서 별과 행성들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관측으로부터, 행성의 운동, 태양, 달, 지구의 본질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과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이를 지구중심설, 천동설 또는 프톨레마이오스 모형이라고 부릅니다. 

바빌론 이후의 천문학에서의 중요한 발전은 고대 그리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 천문학은 천문 현상에 대해 이성적이고 물리적인 답을 구하려 했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는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코스가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였고, 달과 태양까지의 상대적 거리를 측정하였습니다. 한편 그는 처음으로 지동설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2세기에는 히파르코스가 세차를 발견하였고 달의 크기와 거리를 계산하였으며, 어 스트로 랩(astrolabe)이라고 불리는 천문기구를 발명하였습니다. 히파르코스는 또한 방대한 1020개 별의 목록을 작성했으며, 북반구의 대부분의 별자리는 이러한 그리스 천문학에서 유래했습니다. 반면에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주장하였고, 당시의 천문학을 집대성한〈알마게스트〉를 남겼습니다. 천동설은 기독교의 교리에 더 부합하였으므로, 중세에 들어서는 이 책은 천문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받아들여졌고,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천동설이 널리 믿어지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특히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는 바빌론에서 수학·과학적 천문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빌론 천문학자들은 월식이 사로스라는 주기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바빌론 천문학자들은 이후 다른 문명에서 발달할 천문학적 전통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천문학도 중세 유럽에서는 13세기까지 거의 정체되었지만, 이슬람과 다른 지역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약 9세기 초에는 이슬람 지역의 최초의 천문대가 등장했습니다.프톨레마이오스의 저작을 기반으로 천문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슬람은 유럽에서 잃어버린 그리스의 지식을 유럽에 다시 소개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슬람 천문학자들은 기도 시간을 재기 위해서 역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적으로 천문학자 오마르 하이얌은 1년이 365.24219858156일이 되는 그레고리력보다 정확한 역법을 만들었습니다.

 964년에는 페르시아 천문학자 알 수피(Azo phi)가 안드로메다은하를 발견하고, "Book of Fixed Stars"라는 책에서 이에 관해 서술하였습니다. 역사상 기록된 가장 밝은 초신성인 SN 1006 가 이집트 출신 아랍 천문학자인 Ali IBN Rid wan과 중국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1006년에 관측되었다. 이 당시의 아랍 천문학자들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는 많은 알골을 도입하였습니다. 또한 그레이트 짐바브웨와 팀북투의 유적들도 과거에 천문대를 포함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사하라 남쪽의 아프리카에서도 식민지 시대 이전에 천문학 관측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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