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별정리)인도, 바빌로니아, 중국에서 천문학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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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과 예술

연대별정리)인도, 바빌로니아, 중국에서 천문학에 관심

by bigmood 2022.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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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표:기원전 3000~기원전 2000
인도, 바빌로니아, 중국에서 천문학에 관한 관심이 싹튼다.

인도:나바그라하(산스크리트어)는 인도 천문학과 인도 점성술에서 언급되는 9개의 천체와 그들을 신격화한 신을 가리킨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구요성으로 한역되었다.
태양과 달을 포함 5곳의 행성 즉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과 백도와 황도의 교점인 승교점의 나후와 강교점의 계도를 합한 9곳을 이르는 말이다.인도유럽어 민족에서, 점성술은 신과의 소통하는 신호로써 계절적 변화를 예언하고 천체의 주기를 해석하는데 사용된 달력 체계에 뿌리를 두고 기원전 삼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바빌로니아:점성술로 유명한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천체 현상의 예언가로서의 천문학자와 그것들의 해설자로서의 점성술사는 역할 구분이 없었다.
점성술과 천문학은 고대에는 하나였고 같은 분야(라틴어: astrologia)였으며, 불과 서양의 17세기 철학("이성 시대") 때부터 점진적으로 구별되어 인식되었다.
18세기부터 그것들은 완전히 별개의 분야로 여겨지게 되었다. 지구 대기 너머에서 비롯된 객체와 현상을 연구하는 천문학은 과학이며 널리 연구되는 학과이다. 천구의 객체의 외견상 위치를 심리학과 미래 사건의 예언 그리고 밀교 적 지식의 기본 원리로 사용하는 점성술은 과학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점술의 한 방식으로 한정된다.

 

중국의 천문학은 역서의 제작으로 시작된다. 
은대에 이미 조잡한 태음태양력을 만들었다. 
주대 중엽에 윤달을 넣는 규칙이 정확하게 되고, 정연한 태음태양력이 만들어졌다.
또 기원전 4세기경부터 행성을 관측했으며, 일·월식의 주기성 등을 주목하였다. 
BC 104년 한나라 무제의 태초 원년에, ‘태초력이 제정되었다. 이 태초력은 한나라 말기에 유운이 수정한 것으로 ‘삼통력’으로 되었으며, 이것이 후세 역법의 표본이 되었다. 우주론은 선진 시대와 후한 시대에 활발하였다. 
주비산경에는 개천설이 자세히 기술되었다. 이 개천설에 대해서 후한의 장형이 혼천의에서 혼천설을 논했다. 
천문학적으로 보아 주목할 만한 역법은 후한대 유홍의 건상력이다. 이 역법에서 처음으로 달의 운동이 등속이 아니고, 현재 ‘중심차’라고 불리는 불규칙성이 인정되었다. 이 발견으로 삭의 시각의 계산이 정확하게 되고, 드디어 일·월식의 예보 계산을 하게 되었다. 
진나라 시대에는 천문학자 우희가 세차를 발견했다. 수나라 시대의 역법 황극력 유탁의 것인데, 이것은 달뿐이 아니라 태양 운동의 불규칙성도 고려하여 실제의 합에 의거해서 삭의 시각을 계산하는 정삭법이 채용되고 있다. 또 세차가 채택되어 윤달을 두는 법도 개량되었다. 이 역법은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이양풍의 《의봉력》으로 유탁의 이상이 실현되었다.
그 후의 역법으로는 원나라 시대의 곽수경에 의한 수시력이 있다. 이것은 명나라 시대에 《대통력》이라고 개칭하여 사용되었다.


역사적 분리
넓은 의미에서 점성술은 하늘에서 뜻을 찾는 것이다. 점성술은 인류가 천문학적 주기에 관련한 계절적 변화를 측정, 기록하고 예언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를 행함과 동시에 학문으로써 시작되었다는 논의가 있어 오고 있다.
점성술로부터 벌어들인 자금이 그로 인해 점성술에 사용하기 위한 천체력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데 사용되는 천문학 연구를 지원했기 때문에, 점성술과 천문학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구별될 수 없었다. 중세 유럽에서 단어 Astronomia(천문학)은 종종 천문학과 점성술이 실제적 구별 없이 공동으로 포함되는 것으로 두 분야 모두를 포괄하는 데 사용되곤 했다. 이것은 일곱 자유과 가운데 하나이다. 왕들과 다른 통치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왕정에 있어서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왕실 점성가를 고용했고, 그러므로, 천문학 연구에 자금을 댈 수 있었다. 의과 대학의 학생들은 점성술을 일반적으로 의술의 실천에 사용하는 것으로 배웠다.
점성술과 천문학은 17세기를 지나며 19세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분리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점성술에 관한 그의 업적은 이론에만 그쳤는데, 경험주의적 천문학은 물론) 점성술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튀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이 아이작 뉴턴 이전의 가장 저명한 천문학자들은 직업이 점성술사였다. 뉴턴이 가장 틀림없이 점성술을 거부했겠지만, (동시대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와 마찬가지로) 점성술에 흥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시대 이후, 계몽주의 시대에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우주론의 불어나는 인기에 힘입어 점성술에 대한 관심은 쇠퇴했다.
또한, 그 때와 관련해서 처음에는 항법의 보조 기구였던 보다 나은 시간 기록 장치의 개발이 있었는데, 향상된 시간측정기는 검증될 수 있다고 했으며 지속적으로 거짓임을 입증하는 더 정확한 점성술 예언의 예언을 가능케 했다.
18세기 말, 천문학은 그 당시까지 성문화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계몽주의의 모범이 되는 주요 과학들 중 하나였으며, 점성술과는 전혀 별개였다.

천문학과 점성술 구별되는 특성
천문학의 근본 목적은 우주의 물리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점성가들은 황도를 따르는 천체의 배치를 위해서 천문학의 계산법을 사용하며, 천체 현상(점성술의 각, 별자리 위치)에 현세의 사건 그리고 인간사를 관련시키려 한다. 천문학자들은 일관되게 과학적 방법과 자연주의적 전제를 사용하며, 우주의 현상을 조사하거나 설명하는데 수학적 추론을 끌어낸다. 점성가들은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수학적 예측과 혼합된 민속적, 상징적 그리고 미신적 논리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신비주의적 또는 종교적 논리를 사용 사용한다. 점성가들에게는 과학적인 방법이 일관되게 사용되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은 중심이 없으며 동적이고 빅뱅 이론에 의하면 외부로 팽창하는 우주를 추론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채택해 오고 있는 반면, 점성가들은 지구중심적으로 그들의 분야를 실천하며, 우주를 조화롭고 불변하며 정적이라고 여긴다.
점성가들은 항성과 행성의 위치가 개인의 성격과 미래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천문학자들은 실제의 항성과 행성을 연구하지만, 점성술 이론을 지지하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해왔다. 심리학자들은 성격을 연구하는데, 많은 성격 이론이 있지만, 그 분야에서 점성술을 기반으로 하는 주류적 이론은 없다.
점성가와 천문학자는 양쪽 모두 지구와 우주는 서로 (분리되지 않았지만 별개인) 하나의 우주(cosmos)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우주의 필수 부분으로써의 지구를 바라본다. 그러나, 점성가들은 철학적이며 신비적으로 우주를 세속의 사건과 사람들의 개인의 삶에 활발히 영향을 주는 초자연적이며 형이상학적이고 신격 본질이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과학계의 일원들로서 천문학자들은 그들의 개인적 신념과는 상관 없이 그들의 과학적 규약에 재현적 조건으로부터 경험적으로 파생되지 않은 설명을 사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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