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본문 바로가기
천문학과 예술

점성술

by bigmood 2022. 12. 8.
반응형

점성술

점성술은 인간 세계에서 천문학의 현상 또는 천체 현상을 관찰하여 인간의 운명과 장래를 미래를 예측하는 점술이다.
그리고 점성술은 행성, 별, 그리고 사람의 성격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연구이다.
점성술 차트는 사람의 본성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사용된다. 
이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과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서양에서 점성술은 태양과 달 그리고 다른 행성 객체들의 위치에 기반하여 개인의 성격을 설명하고 그들의 인생에서 미래의 사건을 예언한다고 주장되는 천궁도의 체계로 거의 대부분이 구성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궁도를 기반으로 한 점성술의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점성술과 천문학은 고대에는 원래는 같은 학문분야였으나 서구에서는 소위 이성의 시대 인 17세기에에서는 점진적으로분리된 학문분야로 인정하기 시작하여 18세기 말 에는 점성술과 천문학이 완전히 다른 분야로 분리된다.

심리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점성학적 체계를 운명이 아닌 심리에 결부시켜서 개인의 심리나 정서를 보는 심리 점성술이 탄생하게 되었다.이러한 점성술은 근대 이후 관측 도구의 발달로 새로이 발견된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소행성을 비롯한 천문학적 발견과 근대 들어 급격히 발전한 심리학을 결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원래 의미의 점성술과 차이점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소행성인 세레스와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전통 점성술은 소행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반면 현대 심리 점성술은 천 궁도를 해석할 때 소행성도 참고하여 해석하기 때문이다.


ㅡ심리학은 인간과 동물의 심리적 과정과 행동,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학문이다. 이 분야에서의 전문가나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심리학자 또는 심리사라 불린다. 심리학자들의 목표는 정신적(심리적) 기능들이 인간의 행동들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 정신적 기능을 구현하는 생리학적/생물학적인 과정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다.

ㅡ점성술 비판 미신으로 간주.
비과학적이고 종교적으로 망령되다고 판단되는 신앙. 또는 그런 신앙을 가지는 것.
아무런 과학적ㆍ합리적인 근거도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음으로 인해 한편 점성술은 미신으로 간주하고 있다.
상당수의 전통 점성술사들은 이러한 심리 점성술을 인정하지 않는다. 원래 점성술이라는 것이 운명을 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심리학적 관점이 상당히 녹아있는 데다가, 심리 점성술의 체계는 전통 점성술의 관점에서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성술이 대대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 성립 이후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국한되어 있던 점성술이 그리스, 이집트, 인도, 페르시아 지방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기반으로 점성술을 발전시켰는데, 이들이 기여한 것은 국가의 흥망을 보는 데에 쓰인 점성술을 개인의 운세로 보는 점성술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헬레니즘 세계의 성립 이후 이 지역을 양분하였던 로마 제국과 사산 조 페르시아에 의해 점성술은 유지되고 발전되었으나, 밀라노 칙령과 이교 금지령을 위시한 기독교의 발흥 이후로 로마 제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 점성술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방 세계에서는 사산 조 이후 오리엔트 세계를 제패한 아랍인들에 의해 점성술은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아랍 제국은 당시 동서의 교통로에 있었던 나라인 만큼 그리스, 로마의 점성술은 물론이요, 페르시아와 저 멀리 인도의 점성술까지도 융합해서 자신들만의 점성술을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점성술은 십자군 전쟁과 레콩키스타로 대표되는 12세기 이후 동방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다시 서방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점성술이 다시 부흥을 맞이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르네상스 이후인데 이 당시 점성술은 그리스 문화와 같이 유럽 입장에서는 세련된 문화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천문학자도 점성학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하네스 케플러가 그 하나의 예인데 그는 점성술을 '어머니(천문학)를 먹여 살리는 비참한 딸'이라고 말하였다.점성술이 천문학 발전을 뒷받침한 예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점성술 서적은 윌리엄 릴리의 크리스천 점성술이 있다.
(윌리엄 릴리가 집필은 크리스천 점성술은 점성술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점성술발전에 끼친 영향이 큰 책이다.)
(요하네스 케플러)
마지막 점성술사이자 첫 천체물리학자.
점성술이라는 딸이 먹을 것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어머니인 천문학은 굶어죽었을 것이다.
독일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함께 과학혁명의 선구자이자 천체역학의 창시자.
주요 업적으로는 행성 운동을 표현하는 케플러의 법칙이 있다.
미국 성공회에서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함께 성인으로 추대받고 있다. 

하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아이작 뉴턴에 의해 과학적 사고관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프톨레마이오스로 대표되는 점성술은 점점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면서 현대에 이르게 되었다. 이미 대중적인 관심과는 별개로 학문적인 쇠퇴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천문학의 영향으로 수학적인 기법을 많이 도입하다가 예언적인 기능을 크게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점성술의 경우에는 그 예측이나 주장 및 논리에 대해 반증할 수 있는 사례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과학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 역대 군주는 천문현상에 항상 유의하였다. 이 천문현상을 당시에 나타난 지상현상과 아울러 자세히 기록하여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때 점성술에 적용할 준비를 하였다. 이 때문에 중국은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풍부한 관측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의 이러한 관측기록은 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에 많이 실려 있다.
점성술은 천문학과는 다르지만 근세 이전의 천문학의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반응형

'천문학과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이 빛나는 밤  (0) 2022.12.14
겨울철 별자리 황소자리  (0) 2022.12.09
차가운 달  (0) 2022.12.06
태양계의 보석  (0) 2022.12.05
가장 추운 행성  (0) 2022.12.05

댓글